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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의 비극<오늘을 생각하며>

박근혜의 비극

 

   -정원의 흰 목련꽃이 만발했습니다. 
    바야흐로 때는 만화방창의 춘삼월.
    봄은 왔으나 봄이, 봄이 아닙니다. 
   수의를 입은 전 대통령의 모습에 
국민들은 착잡할 뿐입니다-

 

비극입니다. ‘인간 박근혜’의 비극, 아니 그를 보는 국민의 비극, 나아가 대한민국의 비극입니다. 엊그제 대통령이던 사람의 수의(囚衣)입은 모습을 봐야하는 국민들의 심정은 민망하고 착잡합니다. 시절은 춘삼월, 꽃피는 봄이지만 지금 우리는 봄 이 아닌 봄을 맞고 있습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이 왔으나 봄이, 봄 같지 아니 하네”라는 의 유명한 한시(漢詩)의 유래는 멀리 20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서시(西施·월나라), 초선(貂蟬·삼국시대), 양귀비(楊貴妃·당나라)와 함께 중국 역사상 4대 미녀로 꼽히는 후한(後漢)의 절세미인이었던 왕소군(王昭君)은 얼굴이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하늘을 날아가던 기러기가 그녀가 켜는 가야금 선율과 미모에 홀려 날개 짓을 멈추고 땅에 떨어졌다는 ‘낙안(落雁)의 주인공’입니다.

왕소군은 본래 전한(前漢)의 11대 황제인 원제(元帝 BC76~BC33)의 궁녀였습니다. 그런 그녀가 흉노(匈奴)의 왕인 호한야 선우에게 끌려가다시피 시집을 간 것은 뜻밖의 일 때문이었습니다.

때만 되면 북쪽에서 말을 타고 떼거리로 몰려와 살인과 방화와 약탈을 일삼는 오랑캐 흉노는 한나라의 큰 골칫거리였습니다. 흉노는 그때마다 식량과 금은보화, 절색의 미인을 강탈하는 게 다반사였습니다.

황제는 고민 끝에 화공(畫工)에게 모든 궁녀들의 초상화를 그려 바치게 했습니다. 수천 명의 궁녀 중에서 그림을 보고 가장 못난 여인을 흉노로 보내려는 속셈이었습니다. 궁녀들은 황제에게 간택되는 것으로 알고 서로 예쁘게 그려 달라고 앞 다퉈 화공에게 뇌물을 바쳤습니다. 그러나 왕소군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황제에게 올라간 초상화 가운데 당연히 왕소군이 가장 못난 여인으로 뽑혔습니다. 화공이 왕소군을 박색(薄色)으로 그렸던 것입니다.

왕소군이 머나먼 흉노의 땅으로 떠나는 날 황제는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저런 미인을 오랑캐에게 보내다니, 내 이놈을….” 왕소군의 미색이 너무 아까웠던 황제는 화공을 처형해 버렸습니다. 하지만 이미 약속된 것을 되돌릴 수는 없었습니다. 왕소군은 눈물을 흘리며 낯설고 황량한 거친 흉노의 땅을 향해 가야만 했습니다.

뜻밖에 절세미인을 얻은 흉노 왕 호한야 선우는 대단히 만족했습니다. 한나라에서 황제의 얼굴한번 마주해 보지 못한 궁녀였던 왕소군은 전화위복, 일약 흉노 왕의 여자가 됐습니다. 낯선 환경에 고향이 그리웠지만 왕소군은 잘 적응해 아들을 낳고 살았습니다. 그러기를 얼마, 어느 때 선우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당시 흉노의 풍속에는 아버지가 죽으면 자식이 아비의 처첩(妻妾)을 물려받는 게 관례였습니다. 왕소군은 기가 막혔지만 이번에는 자식의 첩이 되어 다시 딸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72세가 되도록 살다가 생을 마감했습니다. 지금 몽고의 어딘가에 있다는 그녀의 돌무덤에는 삭막한 땅에서 푸른 풀이 돋아났다하여 청총(靑塚)이라 부른다고 합니다.

그로부터 600여년이 지난 뒤 당나라 시인 동방규는 돌아 갈 수 없는 고향 땅을 그리며 한 많은 삶을 산 왕소군의 일생을 ‘昭君怨’(소군원)이라 이름 짓고 애절한 시를 읊었습니다. ―胡地無花草(호지무화초)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 “오랑캐 땅에는 풀도 꽃도 없으니, 봄이 와도 봄 이 봄 같지 아니하네.” 그로부터 이 애틋한 명구는 해마다 봄이 되면 시인묵객(墨客)들의 사랑 속에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고 오늘에 전해오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후한의 제도와 풍습을 기록한 역사책 ‘서경잡기(西京雜記)’에 실려 있습니다.

아직은 아침저녁 공기가 차갑지만 한낮은 눈부신 양광(陽光)에 따스한 봄을 느끼기에 모자람이 없습니다. 어김없는 자연의 순환에 따라 바야흐로 봄이 눈앞에 와있습니다. 만화방창(萬化方暢)으로 꽃들은 산천에 만발해 다투어 아름다운 자태를 뽐냅니다.

하지만 민족의 역사를 돌아보면 만물이 약동하는 이 땅의 봄은 희망의 계절만은 아니었습니다. 척박한 논밭에 호구지책(糊口之策)을 의존해 하늘만 쳐다보고 살던 지난 날 이 무렵은 굶지 않고 목숨을 부지하는 것이 첫 번째 과제였던 고난의 계절이었던 것입니다.

이때쯤이면 지난 해 수확한 양식이 떨어지고 보리가 익기 시작하는 초여름이 되기까지에는 풀뿌리, 나무껍질, 초근목피(草根木皮)를 얻기 위해 산과 들을 헤매 다녔던 것이 선조들의 삶이었습니다. 그것은 몇 백 년 전의 일이 아니고 70, 80년 전에도 겪어야 했던 이 땅, 이 나라의 슬픈 전설입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양옆 검찰 수사관 사이에 앉아 침통한 표정으로 서울구치소로 향하고 있다.       /Newsis

그랬기에 봄이 오면 민심은 흉흉해 질 수밖에 없었고 역사적인 큰 사건도 이 봄에 많이 일어났습니다. 1894년 봄 전라북도 고부에서 일어난 동학농민봉기, 1919년 3·1만세운동, 1960년 4·19혁명, 1961년 5·16군사쿠데타, 1964년 한·일회담 반대시위, 1980년 전두환 군부에 맞선 ‘서울의 봄’ 대규모시위, 5월 광주항쟁 등이 모두 봄철에 일어 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그랬기에 1960~70년대 군사독재정권은 봄이 되면 민심을 겁내 대학가의 움직임에 긴장의 끈을 조여매곤 하였습니다.

그러면 경제규모 세계 10위권, 선진국 문턱에 와있는 2017년의 봄은 어떠한가. 아무 걱정 없는 좋은 세상이 되었을까. 봄이 왔으니 봄을 만끽하고 즐기는 봄이 되었을까.

매우 안타까운 일이지만 지금 우리나라는 전에 볼 수 없던 심각한 내우외환(內憂外患)에 빠져있습니다. 난세(亂世)라는 말이 적절할 만큼 안팎으로 어려움에 처해있음이 분명합니다.

시급히 풀어야 할 산적한 현안들은 차치하고라도 대통령 의 탄핵으로 국정은 난맥상에 빠져있고 북한의 연이은 핵 과 미사일도발에 맞선 미군의 신무기들이 하늘과 땅, 바다에서 굉음을 내고 바야흐로 한반도는 세계의 화약고가 되어 일촉즉발의 검은 구름에 뒤덮여 있습니다.

이 봄 우리 국민들은 대통령이 수의(囚衣)를 입고 감옥에 들어가는 보아서는 안 될 딱한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국민들을 평안하게 해 주기는커녕 거꾸로 국민이 대통령을 걱정해야 하는 주객전도의 형국이 되어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저것도 모르고, 이것도 모르고, 손톱만큼도 잘 못한 게 없고 다 엮은 것이니 진실은 밝혀진다”며 모르쇠로 뻗대던 박근혜 전대통령이 급기야 구치소에 갇히는 비극을 봅니다.

박근혜 전대통령은 13가지 범죄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법원의 양형기준에 따르면 박근혜 전대통령은 이론적으로 징역 45년형까지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렇게까지 되지 야 않겠지만 현실은 그렇습니다.

측근들은 “궁궐에서 쫓겨나 눈물로 지새우는 여인에게 사약(賜藥)을 내리는 격”이니 “파면을 당한 대통령을 포승줄과 수갑을 채워 교도소에 넣는 것은 부관참시(剖棺斬屍)와 다를 게 없다”느니 볼멘소리를 하고 “마마! 마마!”라고 외치는 시대착오적인 열혈지지자들이 있다한들 박근혜 전대통령의 운명을 되돌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8시간 40분에 걸친 긴 심문을 마치고 법정을 나올 때 박전대통령의 충혈 된 눈이 젖어 있었다고 합니다. 31일 새벽 3시 3분 드디어 구속영장이 발부돼 양 옆 검찰 수사관 사이에 껴 앉아 호송차량을 타고 경기도 의왕시의 서울구치소로 향하던 그의 그 모습을 보고 어떤 국민이 돌을 던질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국민이 겪는 고통 속에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한걸음 더 발전한다는 점은 확실합니다.

레바논 출신 작가 칼릴 지브란은 그의 명저 ‘예언자’에 이렇게 썼습니다. “그대, 슬플 때 그 슬픔을 가만히 들여다보라. 그 슬픔이 어디서 왔는가를. 그 슬픔은 기쁨에서 온 것임을 알게 되리라. 그대 기쁠 때 그 기쁨을 가만히 들여다보라. 그 기쁨이 어디서 왔는가를. 그 기쁨은 슬픔에서 온 것임을 알게 되리라.”

박전대통령이 구속되던 날 그의 삼성동 자택 울안에는 무심도 하지, 목련 꽃이 만발했다고 합니다. 누가 오는 봄을 막을 수 있으며 피는 꽃을 말릴 수 있겠는가.

김영회  yhk93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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