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
“죽을 날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생사라도 알고
눈을 감았으면 여한이 없겠네.
눈물조차 마른 그들에게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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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장의 미아리 고개’라는 대중가요가 있습니다. 1953년 휴전이 되고 3년 뒤 발표된 반야월 작사 이재호 작곡 이해연 노래의 이 가요는 곡 자체도 구성진 데다 가사 또한 애달프기 그지 없어 60년이 다 된 지금까지 이미자 김연자 주현미 등 여러 가수들의 목소리를 통해 추억의 골든 멜로디로 국민의 가슴속에 새겨져 있습니다.
-‘미아리 눈물 고개, 님 이 넘든 이별고개 / 화약연기 앞을 가려, 눈 못 뜨고 헤매일 때 / 당신은 철사 줄로, 두 손 꽁꽁 묶인 채로 /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 맨발로 절며 절며, 끌려가신 이 고개 / 한 많은 미아리고개’-
미아리고개는 서울 북쪽 돈암동에서 수유리로 넘어가는 언덕길인데 6・25때 북한 인민군이 사흘 만에 서울로 쳐들어 온 길이기도 하고 퇴각할 때 넘어 간 곳이기도 합니다. 작사가 반야월은 피난길에 자신의 어린 딸을 잃은 개인의 슬픔과 연결 지어 미아리고개의 ‘이별’을 주제로 삼아 가사를 썼다고 합니다.
제목에서의 ‘단장(斷腸)’은 ‘창자가 끊어진다’는 뜻으로 견디기 어려운 인간의 심적 고통을 극대화한 표현입니다. 철사로 묶인 손, 절룩거리는 맨발로 자꾸만 뒤를 돌아보며 강제로 끌려가는 남편의 뒷모습은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미어질 수밖에 없고 그렇게 보낸 남편을 이때나 저때나 기다리는 아내, 십년이 가도 살아서 돌아오기만을 염원하는 애달픈 내용의 가사는 그 당시나 지금이나 듣는 이들의 폐부(肺腑)를 찌르고 심금을 울려 줍니다.
이 노래는 전쟁의 비참함과 가족을 잃어버린 슬픔을 그대로 토로하여 국민들, 특히 이산가족들의 상징곡이 되어 더욱 사랑을 받아왔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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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잠시 만났다 다시 헤어져야하는 아쉬운 작별에 울고 있는 이산가족 노인. 누가 이들에게 이런 아픔을 주었는가. / 뉴시스 |
남북이산가족은 노래처럼 6・25를 전후해 북에서 남으로 피난 온 사람들, 그리고 강제로 북으로 끌려가거나 자진 월북해 가족들과 헤어진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를 일컬어 ‘일천만 이산가족’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남과 북의 적십자가 올 추석 이산가족 상봉을 가까스로 합의하자 이를 학수고대하던 전국의 6만6900여명 이산가족들의 기대가 다시 부풀고 있습니다.
얼마나 기다렸던 상봉인가,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들뜨는 정말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상봉대상자로 선정이 되었을 경우이지 번번이 탈락의 고배를 마셔야 하는 대부분의 이산가족들은 기대 반, 체념 반인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상봉 신청자 6만6900명 가운에 100명에 선정된다는 것은 하늘의 별을 따는 것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입니다. 670대 1의 치열한 경쟁이기에 말입니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아 또 한 번 실망을 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지만 그러나 실낱같은 희망이나마 차마 저버리지 못하는 것이 이들의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이들 중에는 20번을 연달아 신청한 이도 있다고 할 정도입니다.
이산가족 상봉이 처음 시작된 것은 전두환 정권 때인 1985년입니다. 당시엔 공연예술단과 함께 서울과 평양을 한 차례씩 오고 가며 상봉을 했고 그것은 1회성으로 끝이 났습니다.
본격적인 상봉은 2000년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남북정상회담에서 이산가족상봉을 합의함으로써 시작됐습니다. 이때 전국의 신청자는 무려 12만9591명이었습니다.
그로부터 한 해에 설, 추석 두 차례 상봉이 이루어져 김 대통령 때 6번, 노무현 대통령 때 10번 이어져 오다가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이 들어서면서 남북관계가 갑자기 냉각돼 5년 임기동안 2차례 176명이 상봉을 했을 뿐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하고는 2014년 2월 19차 상봉에서 83명이 상봉을 했습니다. 그동안 19차례 총 상봉자는 1만6771명으로 전체 신청자의 13%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심각한 것은 생존자의 나이가 갈수록 고령화돼 그 중 80%가 80, 90대라는데 있습니다. 더 이상 때를 놓칠 경우 이들은 천추의 한을 품고 눈을 감을 수 밖에 없습니다.
애초의 상봉신청자 12만9591명 가운데 2000년 이후 사망자는 6만312명으로 올 연말이면 사망자수가 생존자수를 넘어 설 것으로 전망됩니다. 매달 300여명, 매년 3800명이 사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남북관계가 호전 돼 아무 탈없이 1년에 2차례 200명이 상봉한다고 가정 할 경우 현재 6만6900명이 상봉을 하려면 335년이 걸립니다. 그것도 아무 탈없이 매년 지속적으로 상봉이 이루어질 때의 경우입니다. 기가 막힐 일입니다.
다행히 운이 좋아 후보로 선정이 되고 북쪽에 생존자가 확인이 되어 상봉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대부분의 이산가족들은 실낱같은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이때나 저때나 부지하세월(不知何歲月)로 마냥 기다릴 수 밖에 없는 게 현실입니다.
이산가족 문제는 인도주의의 문제입니다. 인도주의는 이념을 초월하는 인류 최상의 가치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그때마다 정치논리에 의해 중단을 되풀이 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국제적십자 기본원칙에는 ‘국적과 인종, 종교와 정치적 입장과 상관없이 고통 받는 이를 돕는다’라고 명시돼 있습니다. 1993년 2월 25일 김영삼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사자후(獅子吼)를 토하며 선언했습니다. “그 어떤 이념도 민족을 우선하지는 못합니다”라고.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없었습니다.
이산가족 상봉문제는 남과 북이 다 같이 인도주의로 풀어야 합니다. 북한은 남에 있는 이산가족들이 체제를 버리고 간 사람들이기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을지라도 인도주의적 측면에서 그들의 한을 풀어 주어야 합니다. 남과 북은 갑을관계(甲乙關係)가 아닙니다. 이산가족 상봉에는 갑과 을이 있을 수 없습니다. 누가 사정하고 누가 시혜를 베풀듯이 할 일이 아닙니다.
북한은 인도주의적 견지에서 상봉을 허용해야 합니다. 그것이 민족애(民族愛)입니다. 민족애가 없는 통일은 허구입니다. 통일, 통일하지만 그것보다 먼저 풀어야야 할 발등의 불이 이산가족의 한을 풀어주는 일입니다. 상봉 횟수도 대폭 늘리고 인원도 늘려 연중 지속적으로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리고 우리 국민들도 더 관심을 갖고 이산가족들의 슬픔을 같이 나눠야 합니다. 그것이 동시대를 함께 사는 국민적 도리입니다. 우리 민족은 남달리 혈연의식이 강한 민족입니다. 한을 품고 눈을 감게 해서는 안됩니다.
이산가족 문제는 우리 현대사의 비극중의 비극입니다. 이 문제를 풀지 않는 것은 남이나 북이나 죄를 짓는 일입니다. “죽을 날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생사라도 알고 눈을 감았으면 여한이 없겠다”는 이산가족들의 탄식이 오늘 우리 모두의 가슴을 칩니다.
이것이 어찌 어느 한 개인의 일이며 한이겠는가. 노구(老軀)에 눈물조차 마른 그들, 도대체 그들이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자유를 찾아 이 땅에 온 것 말고는.
김영회 yhk93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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