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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근희 부회장이 모교인 청주대학교에서 열린 청춘을 위한 토크콘서트 '열정락서'에 참석했다. |
삼성의 사회공헌 활동을 총괄해 온 박근희 삼성사회공헌위원회 부회장이 38년간의 삼성 생활을 마무리했다.
수많은 인재들이 모인 삼성에서 상고·지방대 출신이라는 편견을 깨고 '실력' 하나 만으로 부회장 자리에 올랐던 그는 많은 성공·모범사례를 남기며 '삼성맨의 신화'가 됐다.
머니투데이 보도에 따르면 올해 63세인 박 부회장은 충북 청원에서 태어나 청주상고와 청주대 상학과를 졸업했다.
전형적인 '가난한 수재'였던 박 부회장은 농사짓는 부모님을 도우면서 동생들을 뒷바라지해야 한다는 생각에 상고에 진학했다.
그러나 졸업을 앞두고 대학에 가고 싶었다. 땅을 팔아 간신히 등록금을 대준 부친의 도움으로 청주대에 입학할 수 있었다.
대학을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로 자신의 등록금을 버는 것은 물론 동생들 도시락을 싸서 학교에 보내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1978년 공채 19기로 삼성전관(현 삼성SDI)에 입사한 그는 8년간 경리, 관리업무를 맡았다.
부서의 전표처리 등을 맡았지만 그는 전문가 소리를 들을 정도로 업무에 몰입했다. 경리 전문가로 능력을 인정받은 그는 1987년 그룹 비서실로 자리를 옮겨 7년간 운영팀, 재무팀에서 근무했다.
1995년 임원으로 승진하며 친정인 삼성전관에 복귀했던 그는 국가적 경제위기가 닥쳐온 1997년 그룹 비서실로 복귀해 경영진단 업무를 맡았다.
이후 2003년 말까지 구조조정본부 경영진단팀장으로서 그룹의 감사업무를 총지휘했다.
그는 2002년 상반기 당시 연간 1조원에 가까운 이익을 내던 삼성카드를 정기감사 한 뒤 '양적 팽창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이건희 회장에게 제출했다.
그의 날카로운 안목과 보고 덕분에 6개월 뒤 터진 '카드사태'에서 삼성그룹은 피해 규모를 크게 줄일 수 있었다.
2004년 사장으로 승진한 그는 삼성캐피탈, 삼성카드 사령탑을 맡았고, 이듬해인 2005년 삼성 중국본사 사장에 임명됐다.
이후 2010년 말까지 6년간 중국삼성을 이끌며 '중국 내 제2 삼성 건설' 프로젝트를 주도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등을 겪으며 밤잠을 이루지 못했던 어려운 시기도 있었지만 부하직원들을 다독이는 특유의 '따거(大兄, 큰형) 리더십'과 솔선수범을 실천하며 난관을 극복해 냈다.
중국삼성을 이끌면서 많은 일화도 만들어 냈다. 취임 직후 에어컨용 부품을 만드는 쑤저우 공장을 둘러본 그는 '앞으로 공장 안에선 신발을 벗고 흰 양말을 신은 채 근무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기름투성이의 지저분한 공장 바닥을 '본래 제조공정상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합리화하려는 기존 관성을 깨뜨리기 위한 조치였다.
그는 이후 흰 양말을 신고 몇 차례 직접 점검에 나섰고, 그 공장에선 기름때가 완전히 사라졌다.
'흰양말 사건'은 이후 중국 각 지역의 삼성공장에 '혁신의 바람'을 일으켰다.
'하면 할 수 있다'는 혁신 마인드와 실천을 중시하는 실용적 경영관은 중국 내 삼성의 위상을 크게 높이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1년 삼성생명 사장을 맡아 공격적 영업을 주도했던 그는 2013년 직장인이 오를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자리인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지난해 3월부터는 삼성사회봉사단을 맡아 봉사로 샐러리맨의 끝을 장식했다.
충청비즈 thecm1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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